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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감 백신 접종했더니 심방세동 위험 20%↓…심혈관 질환 위험도 낮아졌다
프랑스 투르대 등 공동 연구팀, 성인 27만여 명 분석독감 백신 접종자, 심방세동 위험 20% 낮아심근경색·심부전·사망 위험도 낮은 것으로 나타나독감 백신 접종자는 비접종자보다 심근경색과 심부전, 사망 위험이 낮았다|출처: 클립아트코리아독감 백신을 맞은 사람은 심방세동이 발생할 위험이 낮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프랑스 투르대학병원 등 공동 연구팀은 국제 의료 데이터베이스인 트라이넷엑스(TriNetX)를 이용해 성인을 대상으로 독감 백신 접종 여부에 따른 건강 결과를 비교했다. 이번 연구는 독감 백신이 감염 예방을 넘어 심혈관 건강과도 관련이 있을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연구팀은 2022년 정기적으로 의료기관을 방문한 성인을 대상으로, 이전 1년 동안 독감 백신을 접종한 사람과 접종 기록이 없는 사람을 비교했다. 이후 나이와 기존 질환 등 65개 요인을 고려해 두 집단의 건강 상태가 비슷하도록 맞췄다. 최종적으로 독감 백신 접종자와 비접종자 각각 13만 8,444명씩, 총 27만 6,888명이 분석에 포함됐으며 평균 2.7년간 추적 관찰했다.분석 결과, 독감 백신 접종자의 심방세동 발생 위험은 비접종자보다 20% 낮았다. 연간 심방세동 발생률은 백신 접종군 0.9%, 비접종군 1.1%였다. 심방세동은 심장의 윗부분인 심방이 불규칙하게 뛰는 부정맥으로, 혈전이 생겨 뇌졸중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와 함께 전체 사망 위험은 15%, 심근경색 위험은 9%, 새롭게 발생하는 심부전 위험은 8% 낮았으며, 심혈관 질환으로 입원할 위험도 3% 낮았다.이러한 결과는 연령과 기존 심혈관 질환 여부에 따른 하위 분석에서도 일관된 경향을 보였다. 독감 백신 접종군에서 심방세동과 심근경색, 심부전, 사망 위험이 전반적으로 낮게 나타났다.연구의 교신저자인 로랑 포셰(Laurent Fauchier) 박사는 “독감 백신 접종은 심방세동을 비롯한 여러 심혈관계 결과의 위험 감소와 관련이 있다”며, “독감 백신이 심방세동 예방에 실제로 효과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이번 연구 결과(Influenza vaccination, incident atrial fibrillation, and cardiovascular outcomes: 독감 백신 접종, 새롭게 발생하는 심방세동 및 심혈관계 결과)는 2026년 7월 국제 학술지 ‘유럽심장학회지(European Heart Journal)’에 게재됐다.출처: 건강이 궁금할 땐, 하이닥 (www.hidoc.co.kr)
“항암 이후 운동 필수”... 운동량 감소시 치매 위험 46% 증가
서울대 연구팀, 암 생존자 26만여 명 대상 분석암 진단 후 운동량 감소 시 치매 위험 46%↑, 유지·증가 시 18%↓항암치료 받은 환자에서 예방 효과 더 뚜렷암 진단 후 운동량이 줄면 치매에 걸릴 위험이 커진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출처: 클립아트코리아암 진단 후 운동량이 줄면 치매에 걸릴 위험이 커진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박상민 교수팀은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를 활용해 암 생존자 약 26만 명을 분석해 이런 사실을 밝혀냈다. 이 연구는 특히 항암치료를 받은 환자에게서 운동의 치매 예방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나, 이들에게 맞춤형 운동 관리가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줬다는 데 의미가 있다.연구팀은 2009년부터 2015년 사이에 암 진단을 받고 3년 이상 생존한 성인 26만 659명을 대상으로 삼았다. 이들은 모두 암 진단 전 3년 이내와 진단 후 1~3년 사이에 국가건강검진을 받아, 암 전후의 운동량 변화를 확인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연구팀은 검진 때 작성한 설문을 바탕으로 일주일간의 운동량을 계산해 '전혀 안 함', '부족함', '적당함', '많이 함' 등 네 단계로 나눴다. 이후 암 진단 전후로 운동 단계가 어떻게 바뀌었는지에 따라 치매 발생 위험을 비교했다.분석 결과, 암 진단 전 운동을 많이 하다가 진단 후 전혀 하지 않게 된 사람은 계속 많이 한 사람보다 치매 위험이 46% 높았다. 반대로 진단 전 운동을 전혀 안 하다가 진단 후 많이 하게 된 사람은 치매 위험이 18% 낮았다. 암에 걸린 후에 운동량이 줄면 치매 위험이 커지고, 꾸준히 움직이거나 더 활동하면 위험이 줄어든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런 예방 효과는 항암치료를 받은 환자에게서 더 분명하게 나타났다. 항암치료를 받은 환자 중 운동량을 유지하거나 늘린 사람은 치매 위험이 뚜렷하게 낮아졌다. 반면 항암치료를 받지 않은 환자에서는 운동량이 많을수록 치매 위험이 낮아지는 비슷한 경향은 있었지만,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수준에는 이르지 못했다. 연구팀은 항암제가 뇌에 미치는 독성 때문에 이들이 인지기능 저하에 더 취약한데, 운동이 이런 손상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으로 분석했다.연구팀은 운동이 뇌의 신경 연결을 돕는 물질(BDNF)을 늘리고, 몸의 염증과 산화 스트레스를 줄여 치매를 막는 데 도움을 준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논문에서 "암 진단 후 운동량 감소는 전체 대상자에서 치매 위험 증가와 연관됐으며, 운동을 유지하거나 늘리는 것은 특히 항암치료를 받은 환자에서 치매 위험을 낮추는 것과 관련이 있었다"고 밝혔다. 다만 이 연구는 관찰 연구여서 운동과 치매 사이의 인과관계를 확정할 수는 없으며, 앞으로 다양한 암 종류를 대상으로 한 대규모 연구가 더 필요하다고 덧붙였다.이번 연구 결과(Impact of Changes in Physical Activity on Dementia Risk Among Cancer Survivors: A Nationwide Cohort Study Comparing Chemotherapy and Non-Chemotherapy Groups: 암 생존자의 운동량 변화가 치매 위험에 미치는 영향: 항암치료군과 비항암치료군을 비교한 전국 코호트 연구)는 2026년 9월 국제 학술지 '캔서 리서치 앤드 트리트먼트(Cancer Research and Treatment)'에 온라인 게재됐다.출처: 건강이 궁금할 땐, 하이닥 (www.hido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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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혈관흉부외과 오정우 과장
흥미로운 혈관 수술의 역사 그리고 미래 (2)
2026.09.15
◇ 인조혈관의 개발, 현대적 혈관외과를 발전시키다제1, 2차 세계대전 중 폭격으로 혈관이 통째로 날아가 버린 군인들에게는 꿰맬 혈관조차 남아 있지 않았고 끊어진 혈관을 이어줄 대체재가 필요했습니다. 1952년, 컬럼비아 대학의 아서 부히스(Arthur Voorhees) 박사는 우연한 기회로 이 문제의 돌파구를 찾게 되었는데, 심장 안을 관찰하기 위해 심실에 넣어둔 비단 봉합사에 피가 닿자, 미세한 구멍들이 혈전으로 메워지며 그 위로 새로운 혈관 세포가 덮는 현상을 목격한 것입니다. 그림 4. 디베키 박사가 대동맥수술에 쓸 인조혈관을 직접 재단하는 장면부히스 박사는 당장 아내의 재봉틀을 빌려 나일론 천을 둥글게 박아 최초의 인공혈관을 만들었고 동물실험을 통해 혈관 대체재로 유용함을 증명하였습니다. 이런 연구를 바탕으로 1954년에는 심장혈관외과의 거장 디베키(Michael DeBakey) 박사가 당시 최신 합성 섬유였던 '다크론(Dacron)'으로 인공혈관을 만들었고 본격적인 대동맥 수술의 시대를 열었습니다.(그림 4) 1970년대에는 우리가 흔히 등산복 소재로 아는 테플론(Gore-Tex) 소재의 인조혈관이 개발되어 혈관우회수술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인조혈관의 개발과 발전은 대동맥을 포함한 모든 혈관의 수술을 가능하게 하여 혈관 수술의 또 하나의 혁신을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중재적 시술, 혈관 수술의 패러다임을 바꾸다1964년 1월, 오레곤 대학의 찰스 도터(Charles Dotter) 박사는 다리 혈관이 완전히 막혀 괴사가 진행되던 82세의 여성 환자 로라 쇼(Laura Shaw)를 만났습니다. 도터 박사는 대퇴동맥을 통해 가느다란 플라스틱 관(카테터)을 밀어 넣어 막힌 곳을 물리적으로 뚫어내는 데 성공하여 중재적 시술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이 아이디어를 더욱 정교하게 발전시킨 이가 안드레아스 그륀트지히(Andreas Grüntzig) 박사입니다. 그는 카테터 끝에 초소형 풍선을 달아 좁아진 심장 혈관을 넓히는 풍선 확장술을 고안했습니다. 1977년 9월, 스위스 취리히에서 38세의 심한 협심증 환자 아돌프 바흐만(Adolf Bachman)에게 첫 관상동맥 풍선 확장술이 시도되었습니다. 그륀트지히가 협심증 환자에게 풍선 확장술을 성공적으로 끝마친 순간은 메스를 들던 혈관외과 의사들에게는 엄청난 충격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이후 심장병 치료의 패러다임을 바꾼 역사적 순간이 되었습니다. 좁아진 혈관을 풍선 카테터로 넓혀도 몇 달 뒤면 혈관이 다시 오그라드는 재협착이 자주 발생하였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1980년대 후반 훌리오 팔마즈(Julio Palmaz) 박사 등이 혈관 내벽을 지탱하는 금속 그물망(스텐트)을 도입하며 풍선 확장술 재협착의 가능성을 현저히 낮추게 되었습니다. 풍선 확장술 및 스텐트 삽입술은 현재 심장혈관 질환의 표준 치료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과거 시술이 어려웠던 복잡한 심장혈관질환 치료까지 점차 영역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그림 5. 풍선 확장술 및 스텐트 삽입술 ◇ 로봇과 하이브리드 시술, 혈관 수술의 미래오늘날의 혈관 치료는 외과적 수술과 중재적 시술의 경계가 무너진 ‘하이브리드(Hybrid)’수술의 시대입니다. 실시간 혈관 투시 장비와 로봇 제어 시스템이 갖춰진 첨단 하이브리드 수술실에서 외과 의사와 인터벤션 의사가 한 팀이 되어 수술과 중재 시술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환자의 신체적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주 최근에는 하이브리드 시술과 더불어 외과 의사의 손을 대신해 정교하게 작동하는 로봇 팔이 수술을 대신하는 시대가 열리고 있습니다.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인공지능의 지원을 받은 로봇수술이 보편화된다면 혈관 수술은 더욱 더 한 차원 높게 발전할 것입니다.(그림 6)불로 혈관을 지지던 소작술에서 시작된 혈관 수술은 미세한 바늘과 실, 그리고 합성 섬유를 이용한 인조혈관과 금속 스텐트, 로봇 수술 및 하이브리드 수술에 이르기까지 인류가 고통과 두려움을 극복하고 과학기술의 발전이 만들어낸 도전의 역사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혈관 수술 분야는 가늘고 정밀한 로봇 수술 기구의 개발과 인체 조직과 완벽히 동화되는 생체 흡수성 신소재 개발을 통해 끊임없이 진화하며 인간의 소중한 생명선, 혈관을 지켜내기 위한 끊임없는 도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그림 6. 로봇수술 장면
심장혈관흉부외과 오정우 과장
흥미로운 혈관 수술의 역사 그리고 미래 (1)
2026.08.21
현대 의학에서 혈관 수술은 확대경을 이용해 머리카락보다 가느다란 실로 찢어진 혈관을 꿰매거나, 정교한 카테터를 이용해 막힌 혈관을 뚫어내는 정밀과학의 영역입니다. 반면 마취법과 소독 개념이 없었던 고대와 중세 시대, 혈관 수술은 환자에게는 극심한 고통을 주었고, 출혈 부위를 불로 지지는 방법 외에 할 것이 없었던 의사에게는 좌절과 공포였을 것입니다. 인류가 좌절과 공포를 극복하고 혈관 수술을 가능케 한 역사적 과정은 한 편의 생존 드라마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고대 이집트의 금기에서 로마 장군의 비명까지인류가 혈관의 이상을 인지한 최초의 질환은 육안으로 쉽게 관찰되는 '하지정맥류'였습니다. 기원전 1500년경 작성된 고대 이집트의 '에베르스 파피루스'에는 하지정맥류를 '공기가 찬 구불구불한 매듭'으로 묘사하고 있고 당시의 처방은 '절대 건드리지 말 것'이었습니다. 섣불리 칼을 대었다가 발생하는 대량 출혈을 통제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입니다.이 금기에 처음으로 도전한 이가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입니다. 기원전 5세기경 그는 정맥류 치료를 위해 다리를 압박하거나 의도적으로 혈관에 상처를 내 혈전을 유도하는 초기 형태의 천공술을 시도했습니다.로마 시대에 이르러 혈관 수술은 더 과감해졌지만 잔혹했습니다. 기원전 1세기 로마의 영웅 가이우스 마리우스 장군은 마취 없이 생살을 째고 다리 정맥을 뽑아내는 수술(하지정맥류수술)을 받았습니다. 역사서에 따르면 그는 한쪽 다리 수술의 극심한 통증을 견딘 후, "치료법이 고통보다 못하다"며 나머지 다리 수술을 거부했다고 전해집니다. 이 시기 갈레노스 같은 의학자들은 출혈을 막기 위해 혈관을 묶거나 인두로 지지는 원시적인 지혈법을 제안하기 시작했습니다.중세의 암흑기, '이발소 의사'와 공포의 끓는 기름중세에 접어들며 의학은 외려 퇴보의 길을 걷습니다. 종교적 이유로 인체 해부가 엄격히 금지되면서, 수술은 대학의 의사가 아닌 칼을 다룰 줄 알던 '이발소 의사(Barber-Surgeon)'들의 몫이 되었습니다.당시 의학을 지배한 것은 인체의 네 가지 체액 균형이 깨지면 병이 생긴다는 '체액설'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중세의 혈관 치료는 역설적이게도 병을 고치기 위해 환자의 혈관을 열어 피를 뽑아내는 '사혈(Bloodletting) 요법'이 주를 이루었습니다.한편, 당시 전쟁터에서 부상병의 대량 출혈을 막는 방법은 야만에 가까웠습니다. 부상병의 사지가 절단되면 이발소 의사들은 출혈을 잡기 위해 펄펄 끓는 기름을 상처에 들이붓거나, 빨갛게 달군 달팽이 모양의 인두로 혈관을 지지는 '소작술'을 감행했습니다.(그림 1) 환자들은 극심한 통증에 쇼크사 위험에 노출되었고, 살아남더라도 주변 조직이 괴사해 2차 감염으로 사망하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지혈을 위한 유일한 치료법이 환자에게 더 큰 재앙이 된 외상치료의 암흑시기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림 1. 중세 전쟁터에서 지혈을 위해 불에 달군 인두로 상처를 지지는 장면앙브루아즈 파레, 인류를 소작의 고통에서 구하다이 잔혹한 치료법에 종지부를 찍은 인물이 바로 16세기 프랑스의 군의관 앙브루아즈 파레(Ambroise Paré)입니다. 종군 의사였던 그는 지혈을 위한 끓는 기름이 부족해지자, 고육지책으로 달걀노른자와 장미유를 섞은 고약을 부상병들의 상처에 바르게 하였습니다. 이튿날 아침, 기름으로 지진 병사들은 고열과 염증으로 신음한 반면, 고약을 바른 병사들은 통증이 덜하고 상처가 아문 것을 목격했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파레는 끔찍한 소작법을 과감히 폐기했습니다. 대신 고대 로마의 문헌에서 언급되었던 손상된 혈관을 직접 바늘과 실로 묶는 '혈관 결찰술'을 현장에 도입했습니다.(그림 2) 이후 절단 수술의 생존율은 비약적으로 상승했고 현대적인 혈관 외과 수술의 기틀이 되었습니다. 그림 2. 부상당한 병사의 발에 혈관 결찰술을 시행하는 장면알렉시 카렐, 현대적 혈관 수술의 서막을 열다손상된 혈관을 직접 꿰매는 진정한 혈관 수술의 서막을 연 이는 프랑스 출신의 의사 알렉시 카렐(Alexis Carrel)입니다. 1894년 프랑스 대통령 사디 카르노가 괴한의 칼에 찔려 문맥이(간으로 가는 큰 혈관) 손상되는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바로 병원에 이송된 대통령에게 프랑스의 내로라하는 외과 의사들이 모여 지혈 수술을 시도했으나 손상된 혈관을 봉합할 수 없어서 과다출혈로 사망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이 수술 과정을 참관했던 젊은 의사 카렐은 큰 충격에 빠졌고 이후 혈관 봉합술의 개발에 전념하게 되었습니다. 프랑스 리옹의 자수 장인 마담 를르와(Madame Leroudier)를 찾아간 카렐은 그에게서 머리카락보다 가느다란 미세 바느질 기술을 배웠고, 실에 인간의 지방을 코팅해 마찰을 줄여 혈관을 봉합할 때 거친 실의 표면 때문에 혈관이 손상 받는 것을 줄이는 법을 고안해 냈습니다. 그리고 혈관 끝을 세 군데로 잡아당겨 팽팽한 삼각형 모양으로 만든 뒤 꿰매는 ‘삼각 봉합법’을 창안했습니다.(그림 3) 이 기술로 비로소 제대로 된 혈관을 연결하는 수술이 가능하게 되었고 이 공로를 인정받아 그는 191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거머쥐며 근대 혈관 수술의 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그림 3. 카렐이 고안한 삼각봉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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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과 신대수 과장님과 간호사 분들을 칭찬합니다.
성가롤로 병원 신경과를 소개받고 다닌 지 꽤 시간이 지났습니다.
병원을 다니다 보면 진료하시는 선생님과 의료진분들을 자연 눈여겨 보게 됩니다.
개인 병원이든 종합 병원이든 의사 선생님들은 자리에 앉아서 환자를 맞이합니다.
그런데 여러 선생님 가운데 오직 신대수 과장님만 서서 환자의 눈을 맞추면서 환자를 맞습니다.
혹시 성가롤로 병원 선생님들만 그런가 했지만 다른 과에 갔을 때 다른 의사 선생님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환자에게 반말을 하는 의사 선생님도 계시는데 신대수 과장님은 높임말을 쓰심은 물론이거니와 오시는 환자분들을
서서 맞이하셨습니다. 하루에 진료하시는 환자 수가 적지 않을 텐데 감탄했습니다.
그리고 신경과에서 근무하시는 간호사 분들께선 어떤 날은 사람이 많아서 짜증이 날 만한데도 신경질 내지 않고 차분히 근무하시더라구요.
상당히 친절하다고 느꼈습니다.
병원에 간다는 것이 그리 편하거나 즐거운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친절하신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분들의 모습에서 저는 안정감을 느꼈습니다.
아픈 사람을 상대하는 것이 쉽지도 편하지도 않을 것이 분명하지만 모두들 성취감과 보람을 느끼셨으면 좋겠습니다.
성가롤로 신경과는 참 좋은 곳입니다.
신대수 과장님과 간호사 분들께 고맙단 말씀 드립니다.
5B병동 간호사님들을 칭찬합니다
친절, 배려, 돌봄의 다른 표현은 '사랑'입니다.
생명을 살리는 또다른 역할의 의료행위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9월에 저는 5B병동에 입원했습니다.
수술 전 긴장의 상태, 수술 후 서서히 회복해가는 고통스런 과정, 이 시간에는 유독 존재의 온 감각이 예민하게 열려 있는 듯합니다.
저의 움직임은 제한되어 있는 상태에서 주변에서 오가는 손길과 발걸음, 드나드는 움직임과 건네는 말에 마치 '온도계'가 달려 있는 듯
제 주관적 온도계가 빠르게 작동함을 체험하곤 합니다.
몇차례 수술 경험을 한 제게 이번 입원기간에는 5B병동 공간 안에서
하느님께서 사랑, 곧 'CARITAS'도 배우고 되새기는 기회로 초대하시는 듯했습니다.
'까리따스'는 수도회 이름이며, 사명이기도 합니다.
5B병동에서 마주한 '사랑'의 요약입니다.
혈관이 잘 잡히지 않는 환우가 가능한 한 덜 고통스럽게 온 주의를 기울여 바늘을 꽂아 주고,
꽂은 바늘끝이 움직여 불편해 할 때면 언제든 뺐다가 다시 잡아주며 불편한 수고를 감내하시던 사랑,
친절히 약을 전해주시던 사랑,
아침과 저녁 하루 안부를 친절히 묻고 살피시던 사랑,
수술 관련 부위의 상태와 보조기 상태를 세밀히 살피시던 사랑,
텀블러를 떨어뜨려 많은 물을 쏟았을 때 바쁜 일을 멈추고 몸을 굽혀 다 닦아주고 안전을 염려하시던 사랑,
도움 요청을 할 때면 귀찮은 기색 없이 언제든 응해주시던 사랑,
퇴원 후 유의사항을 세세히 알려주시던 친절한 사랑 등
돌아보니 모두 일상 안에서 이루어지는 '까리따스'였습니다.
일상을 살아가며 직업과 일로서만이 아니라, 일 속에 담은 사명감, 소명의식을 전해받는 기회였지요.
성가롤로 병원이 이렇게 함께 나아가고 있음을 몸으로 체득할 수 있게 가르쳐주신
5B 병동의 모든 간호사님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9월의 마지막날 '칭찬합시다' 게시판에 글을 남기는 애덕으로 저도 '까리따스'를 봉헌하고자 용기를 냈습니다.
당연히 정우철 과장님과 김상우 주치의께도 깊이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다시 건강히 걷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께 드리는 기도 안에 인사드립니다.
평범한 일상을 사랑으로 살아가면서 서로서로 선물이 됨을 알려주신 하느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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